“어어 지금 준비는 하고 있어.”
아래, Y, Y, A, 앞,
“야 철권하는 소리 다 들리거든? 너진짜 안 나올 거야?”
이 놈은 정말 쓸데없는 데에 귀가 밝다.
콤보가 끊겨서 그대로 KO 패턴에 들어갔다. 난 패드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.
“아니 이 판만 하고 나갈 거였어.진짜로. 옷 다 입었어.”
“아 알았어 알았어. 야진짜 너 걱정해서 이런 거 하는 건데, 네가 안 나오면 어쩌란 거냐?”
진짜 화난 거 같아서 왠지 좀 미안하기도 하다.
“어, 알아……미안. 좀만 기다려.”
전화를 끊고 TV를 물끄러미 바라보니, 이미 시작된 다음 라운드에서 그냥 맞고 있는 중이다. 그 모습이어딘가 지금의 내 신세와 같아서 괜히 울적해진다.
클럽에 가자는 말을 들은 지 몇 년만이었던가. 당최 그런걸 즐기는성격도 아닌데, 거절하려는 나를 친구들은 억지로 몰아세웠다. 뭐그 정도 가지고 집에서 안 나오냐고, 오타쿠같이. 어서 연애시절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고.
이 놈의 지갑이 어디 갔지.
나갈까 말까 하는 자리에 나가기 전에는 언제나 뭔가 시간 끌 거리가 생기는 거 같다. 뭔가 문 밖으로 나서기 직전까지 나를 최대한 고민하게 만들기 위해서. 뭔가지박령같은 종류인가? 나를 못나가게 하기 위해서 잡아 끄는 건가?
소파 밑을 뒤질 때 즘에 아까 한 생각이 연장된다. 그녀를 만나기전의 일상……이라. 일상은 그렇게, 패턴이나 하는 일이나 같은 걸로 정의되는 게 아닌 거 같다. 실상그녀와 함께였을 때도 딱히 뭐가 달랐던 거는 아니니까. 그냥 조금 더……마음가짐의차이?
소파 밑에서 오래된 잡지가 두세 권 나온다. 월간 바둑. 주간 격투가 Young. White Dwarf 200…
“…8년? 이거 얼마나오래된 거야?”
그러고 보니 이런 걸 하던 때도 있었구나,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까하던 생각에 더 확신을 가진다. 취미나, 생활패턴이나, 이런 건 딱히 누가 있든 없든 자연스레 변하고 하는 그런 성질의 것이다. 4년전에 내가 즐기던 일을 지금 한다고 해서 내가 4년 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니까.
그냥 더 근본적인 곳에서.
아무 생각 없이 뭐든 먹으면 불러내고, 아무 생각 없이 혼자 앉아서도옆에 앉을 자리를 확보하고, 아무 생각 없이 제일 먼저 연락하고. 아무생각 없이 의지한다. 그런 게 큰 거 같다.
지금 나에겐 아무 생각 없이 연락할 사람이 없다. 그게 가장 큰 차이다.
아 지갑 존나 안 보인다. 분명 이 방 안에 있을 텐데.
시계를 보니까 벌써 아홉 시가 다 되간다. 나가서 만나면 아홉 시반. 클럽에 들어가면 열 시. 좀 마시고 놀다 보면 열두시. 얘기 좀 하게 2차 나가면 한 시.
정말 그러고 싶나, 나는? 지금? 이 나이에? 이 기분에?
“……지갑 어딨는 거야……”
소파에 다시 몸을 던지고 아무 생각 없이 패드를 잡고 잇는다. 카즈야를고른다.
-넌 자기 맘대로 안 되는 거에 너무 민감해.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않는 게 훨씬 많다고.
그녀가 옳았을 지도 모르겠다.
하지만 여기서는 내 마음대로 된다. 앞, 아래, 아래 앞, Y를누르면 풍신이 나간다. 위를 누르고 발 두 개를 번갈아 누르면 나락 쓸기가 나간다.
자기 몸조차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에서, 게임 안에서는 그나마모든 것을 알 수 있다.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된다.
고 생각하는 사이에 콤보를 맞고 졌다.
“……에라이!”
패드를 던지려고 귀 뒤까지 들지만, 이내 멈춘다. 던져서 패드가 고장 나면 외출해야 한다. 테레비라도 깨지면 대참사다. 아니, 최소한 일어나서 패드를 주우러 가야 한다.
패드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어서 문자를 보낸다.
[역시 안되겠다. 다음에보자. 내가 술 살게. 재밌게 놀아라.]
분명 멀쩡히 지낼 거라고 장담했는데. 마음이란 것도 마음대로 안되는게 답답하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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